위대한 애국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은 인간이 만든 20세기 최악의 재앙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소련과 유럽 국가들을 파시즘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은 우리 할아버지들이었고, 독일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소련은 독일군과 동맹국의 거의 모든 군사 부대를 박탈하고 대부분의 사단을 패배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승리는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어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처럼 우리 자녀와 손주들에게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 피비린내 나는 행동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영웅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과거의 영웅들과 우리가 학창 시절부터 이미 잊고 있었던 끔찍한 사실들을 기억하기에 가장 좋은 날입니다.
사실 #1: 레닌그라드 봉쇄는 872일이라는 긴 이틀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사실 #2. 남성뿐만 아니라 80만 명 이상의 여성도 전선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90명 이상의 공정한 섹스 멤버들이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여성 연대도 여러 개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46항공연대 대원들은 ‘밤의 마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3. 1941년 8월 24일, 24세의 알렉산더 판크라토프는 적 기관총을 엄호했고, 덕분에 전우들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끔찍한 전쟁의 역사에서 감히 그런 위업을 달성한 최초의 영웅이었습니다. 사실 #4. 모두는 또 다른 비슷한 위업을 알고 있습니다 : 19 세의 알렉산더 마트로 소프는 독일인의 발사 지점의 포용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이 두 병사와 같은 영웅은 400명이 넘는 수많은 영웅이 있었습니다. 코요테와 오소리가 서로 사냥을 돕기 위해 기묘한 텐덤을 형성합니다. 사실 #5. 남자뿐만 아니라 개도 최전방에 배치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전투 메시지를 전달한 통신견, 400만 개가 넘는 지뢰를 제거한 폭탄 탐지견도 있었습니다. 상병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별할 수 있었고 부상당한 사람이 의식을 잃으면 그를 살리기 위해 얼굴을 핥아주기도 했습니다. 군인의 등에 약품이 든 가방을 고정하고 개는 군인이 상처에 붕대를 감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다음 부상자에게 기어 올라갔습니다. 총 6만여 마리의 개가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사실 #6: 전쟁이 시작된 후 모스크바 정부는 크렘린궁을 위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붕, 벽, 외벽이 다시 칠해졌고 수도 중심부에서 보면 주거 지역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7. 오늘날까지 역사가들은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는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전후 몇 년 동안 7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오랫동안 희생자 수는 집계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공식적으로 2,6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소련 전역에서 약 4,6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다른 수치도 있습니다. 사실 #8: 제3제국은 710만 명이라는 훨씬 적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사실 #9. 벨로루시에서는 나치가 9,200개의 정착촌을 불태웠고, 그 중 절반 이상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불타 없어졌습니다. 사실 #10. 소련은 1955년까지 독일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양국은 10년 더 전쟁 중이었습니다. 사실 #11. 승전 기념일이 한꺼번에 그렇게 큰 명절이 된 것은 아닙니다. 전쟁 후 처음 2년 동안은 5월 9일이 휴무일이었지만, 새해로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5월 9일은 정상적인 날이 되었습니다. 물론 대승리의 기억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으며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날을 축하했습니다. 공식적으로 5월 9일은 1965년 브레즈네프 치하에서만 다시 쉬는 날이었습니다. 그때 붉은 광장에서 첫 번째 퍼레이드가 열렸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승리의 날은 꽃 놓기, 축제 행렬, 불꽃 놀이 등 우리가 이미 익숙한 점점 더 많은 전통을 획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 조종사 예브도키아 베르샨스카야, 유일한 여성으로 수보로프 훈장 수상
마트로소프에 의해 폐쇄된 독일군의 ZOT
퍼레이드 중인 사퍼견들
제국의회 건물에 새겨진 소련 군인들의 비문
1945년 독일군 원수 빌헬름 케이텔이 독일 무조건 항복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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